<W 기고> 일제 당시 '도일'과 '일본군에 지원 "한 조선인의 규모 = 한국이 숨기고 싶은 역사 자료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무렵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은 190 만명 정도였다. 그 중 120 만명은 한반도 (조선 반도)에 돌아와 70 만명 정도는 일본에 잔류했다.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의 인구는 1911 년 (※ 한일 합방 다음 해)의 2527 명을 효시로, 종전 직전의 1944 년에는 193 만 6843 명으로 증가했다. 33 년간 760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이 기간 동안 1914 년에만 재일 조선인의 인구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을뿐 나머지 연도는 모두 전년 대비 플러스를 기록했다. 1917 년의 경우 전년 대비 150 %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1911 년 2527 명에서 시작하여 1944 년에 193 만 명 이상의 인구가 된 것은 전체 기간에서 매년 평균 22 %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특기 할 것은 '3 · 1 운동 (※ 만세 사건)'을 계기로 1919 년에 일본 정부가 조선인의 일본에의 도항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일본에 건너 가는 조선인의 규모는 변함없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또한 관동대 지진이 발생한 1923 년의 재일 조선인의 인구는 8 만 415 명이었다지만, 1924 년의 재일 조선인의 인구가 11 만 8152 명으로 크게 증가한 것도 특기 할 만하다.

한마디로 일제 시대의 기간 동안 한반도의 조선인은 취업, 학업 새로운 기회 추구 등 다양한 사유로 끊임없이 일본 땅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타났다.

●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인구 (※ 출처 : 모리타 芳夫 "숫자가 말하는 재일 한국 · 조선인의 역사」)
1911 년 2527 명
1912 년 3171 명 (전년 대비 증가율 25.5 %)
1913 년 3635 명 (14.6 %)
1914 년 3542 명 (-2.6 %)
1915 년 3917 명 (10.6 %)
1916 년 5624 명 (43.6 %)
1917 년 1 만 4502 명 (157.9 %)
1918 년 2 만 2411 명 (54.5 %)
1919 년 2 만 6605 명 (18.7 %) ※ 조선인의 일본 여행 제한 조치
1920 년 3 만 189 명 (13.5 %)
1921 년 3 만 8651 명 (28.0 %)
1922 년 5 만 3722 명 (39.0 %)
1923년, 80,15명(49.7%) ※관동 대지진 출생
1924년에는 118,152명(46.9%)
1925년에는 129,870명(9.9%)
1926년에는 142,798명(10.7%)
1927년에는 165,286명(14.9%)
1928년 238,102명(44.0%)
1929년에는 275,206명(15.6%)
1930년, 298,091명(8.3%)
1931년에는 311,247명(4.4%)
1932년 390,543명(25.5%)
1933년 456,217명(16.8%)
1934년 537,695명(17.8%)
1935년 625,678명(16.4%)
1936년 6만9천501명(10.4%)
1937년 735,689명(6.5%)
1938년 79,978명(8.7%)
1939년에는 967,591명(21.0%)
1940년 119만444명(23.0%)
1941년 1,469,000명(23.4%)
1942년 1.625254명(10.6%)
1943년에는 1,882,456명(15.8%)
1944 년 193 만 6843 명 (2.9 %) ※ 조선인 징용 시작
● 조선인 청년의 일본군 자원 입대 현황
1938 년 : 400 명 모집에 2900 여명이 지원 (경쟁률 7.2 대 1)
1939 년 : 600 명 모집에 1 만 2300 여명이 지원 (20.5 대 1)
1940 년 : 3000 명 모집에 8 만 4400 여명이 지원 (28.1 대 1)
1941 년 : 3000 명 모집에 14 만 4700 여명이 지원 (48.2 대 1)
1942 년 : 4500 명 모집에 25 만 4300 여명이 지원 (56.5 대 1)
1943 년 : 5330 명 모집에 30 만 3400 여명이 지원 (56.9 대 1)

1940 년 (경쟁률, 28.1 대 1)의 경우 지원했지만 탈락 한 일본군에 입대 할 수 없게 된 것을 비관 한 강원도 횡성군있는 청년 (이모)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기사는 한국의 보수 논객 펀드 빌더 씨의 기고문을 일본어로 번역 한 것입니다. 한국 미디어는 이미 한국어 버전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번역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당사에 있습니다.

2021/09/22 21:09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