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기고> 바보들이 독도 (다케시마)에 대한 방식 = 한국과 일본, 영토 문제의 손익
센카쿠 열도 (중국 명 : 댜오위다오 · 디ァ오유다오)는 일본이 실효 지배한다. "실효 지배"란 말은 "영유권 분쟁중인 '란 뜻이 담겨있다. 30 여년 전만해도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 열도에 대해 "미해결 보류"라고 무언의 합의를 유지했다. 그런데 1992 년에 중국이 영 해법을 발표하는 동시에 갈등이 표면화했다.

그 후의 전개 양상은 "중국의 공세 vs 일본의 무대응 '정도로 요약된다. 중국 순시선과 정찰기가 센카쿠 열도를 침범했다는 소식은 낯선 것이 없게되었다.

일본은 이에 "냉정 모드 '를 유지하고, 필요 최소한으로 대응 할 뿐이다. 중국은 '미해결 보류'방침의 준수 게 실효 지배 할 수없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센카쿠 열도의 영구 포기를 의미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실제 행동에 착수 한 것이다 . 상대를 자극하고 분쟁 이슈를 극대화함으로써 현상을 타파 해 보자는 의도이다. 실효 지배 할 수없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이다.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는 일본은 이러한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고 무대응 전략을 유지하고있는 중이다.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면 중국의 의도에 휘둘리지이 14 억의 일반 중국인까지 자극하게되어 실익도없고,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부담 만 될 뿐이라는 것을 일본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센카쿠 열도에 대한 열기 "중국의 공세 vs 일본의 무대응 '의 양상은 각자의 전략적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있다. 이러한 '합리적 선택 vs 합리적 선택」라고 동등의 구도라면 실효 지배하는 쪽이 당연히 유리하다.

중국 애초의 기대는 '중국의 공세 vs 일본의 대응', 즉 '합리적 선택 vs 비합리적인 선택」의 전개였다 것으로, 일본이 이에 연루되지 않았던 것이다.

독도 (일본 명 다케시마)는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있다.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이다. 독도가 영유권 분쟁 중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한국인이 많다. 그러나 상대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여 지속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게되면,이 경우 우리의 소망과는 무관하게 영유권 분쟁이 성립한다.

영유권 분쟁을 해소하려고하면 상대방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무력화 시키거나 공적 신용있는 기관 (ICJ : 국제 사법 재판소 등)의 판결을 통해 상대가 더 이상 그래 밝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의 주장을 완벽하게 억제 할 수없는 것과 동시에, ICJ 행을 기피하고있다. 한국 언론에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뒷받침 해주는 고지도와 문헌 등이 수시로 보도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일본 측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일본의 언론 보도 사례 다.

시마네 현은 21 일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 한에도 시대 후기의지도, 다섯 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하이 풍속 인정 之 소식 부도 전도」와 「하이 초지 전도」의 두 점은 막부의'에조 조사 대」에서 측량 조수로 근무 한 탐험가 "최상의 徳内"가 1790 년에 제작 한 것으로, 시마네 현은 '다케시마가 일본 령이라는 인식이 막부를 비롯해 널리 퍼져 있었음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 "라고 밝혔다. 다른 세 점은 "일본 수준 북방 그림」 「관정 아시아지도」(1796 년)과 '화이 목록도」(1806 년)이다. 시마네 현은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가 각지의 박물관 등을 조사하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이 초지 전도」에는 오키 제도의 북서쪽 섬의 이름은 없지만, '다케시마'가 그려져 있으며, 본토와 같은 빨간색 (갈색)으로 칠해져있다. "일본 수준 북방 그림 '등의 두 점은 두 섬에'마츠시마 (현 다케시마) '와'다케시마 (현 한국의 울릉도) '라고 표기가되어 있으며, 본토와 같은 적색으로 착색 되어있다. "화이 목록도」에도 섬에"대나무 시마」 「소나무 시마」라고 기재 일본 령으로 분류하고있다. (후략 2014 년 1 월 21 일 「요미우리 신문」)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있는 다케시마 (시마네 현 오키 노시 마쵸)를 둘러싸고 시마네 현은 17 일 메이지 30 (1897) 년 경에 실시 된 강치 잡이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발견됐다고 발표 했다. 사냥에 종사하고 있던 사람의 친족이 1977 년에 남긴 있었다. 독도의 영토 편입을 메이지 38 (1905) 년에 정부가 내각 회의 결정하기 전부터 주변에서 사냥과 어업이 영위되고 있었던 것이 편입에 이어진 것으로되어 현은 "일본이 영유권을 확립하는 과정을 설명하기위한 귀중한 보강 재료 "라고 평가하고있다. (후략 2017 년 2 월 17 일 「산케이 신문」)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은 따라서 어느 한쪽이 영토 욕심에 눈이 멀어 무리를 통과 여부가 아니라 나름대로 유리한 증거를 각각 확보 한 상태에서 대립하는 양상이라보기 이 바로 적절하다.

중요한 요점은 역시 '실효 지배'이다. 과거에 일본 정부는 "한국의 실효 지배"를 인정하고 내심으로 "물리적 점령이 불가능하지만 체면에 또 명분 상 영유권 주장은 계속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측도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바람이었다.

이는 그동안 일본이 말로만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군함 등의 물리력을 동원해서 협박을 가한 것은 없었다 사실 만 봐도 알 수있다.

1965 년 한일 협정 이후 한일 양국은 독도에 대해 사실상 '미해결 보류 "원칙을 견지하고 무난하게 보냈다. 실효 지배하는 한국 측에서 이러한 「미해결 보류 '상태의 지속은 일본에 대한'판정승 '이자,'독도의 완전 소유 "다름없는 행복한 상황의 전개라고 볼 수 있었다 .

그런데 이런 유리한 상황을 한국 스스로가 먼저 먼저 걷어 찼다. 1997 년 김영삼 (김영삼) 대통령이 양국 간의 이러한 암묵적인 합의를 깨고 독도에 선박 접안 시설 및 방파제를 전격적으로 건설했다. 이를 계기로 한일의 독도 영유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하게되었다.

2006 년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때는 국제 수로기구 (IHO)를 통해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한 한국식 이름을 등록하려고 시도해서 일본에서 큰 반발을 샀다. 더 나아가 한국은 이때부터 한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독도 개방'을 전격적으로 선언하여 승인 된 사람은 누구나 독도를 방문 할 수 있도록했다.

그 후, 독도는 연예인들에 의한 각종 반일 성능이 확장되고 청소년 탐방, 태권도 공연, 한복 패션쇼, 바둑 대회 등 각종 행사가 줄을이었다.

실탄 사격 훈련도 실시되고 국회의원들의 만세 삼창 무대로까지 사용되었다. 급기야 대통령의 방문에까지 이르게 동시에 독도는 한일간의 핫 이슈로 완전히 자리를 차지하게되었다.

일본은 반발의 차원에서 각종 교과서에 독도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강화시켜 나가고 2006 년에는 '다케시마의 날'이란 행사를 만들고 그 후 매년 행사의 규모를 확대 해 가고 있다.

2006 년 당시의 '토마스 시퍼 "주일 미국 대사는 한일 간 독도 갈등에 대해 미국 국무부 등이 같은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일본은 국제법의 허용 범위 내에서 권리를 행사하고있다. 한편 한국은 비합리적으로 (irrational) 행동하고있다. 한국이 미친 행동을 채택하거나 (do something crazy)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양측이 한발 씩 물러한다 "

한일간의 이러한 대립이 계속하는 때, 그동안 독도에 무관심했던 많은 일본 국민이 서서히 독도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저렇게 난리인데, 우리나라 정부는 무엇을하고 있는가?"라고 바람 여론이 일본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점차 자국민에게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몰리게되었다. 도쿄 올림픽의지도에 독도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일본 정부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있다.

면, 일본과의 독도 갈등으로 지금까지 한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아무것도 없다. 이미 실효 지배 상태이기 때문에 얻은 것은 하나도없고, 앞으로도 역시 얻을 수있는 것은 없다.

잃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너무 많아 열거 할 수조차 없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격감 시작한 일본 관광객 6 년간 교착에 빠진 어업 협정 등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 지역과 피해 파급을 모두 합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런데이 같은 피해를 입었다하더라도 현재의 실효 지배 상황을 무난하게 유지조차 계속 된다면 그래도 그나마 다행 일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점점 싸늘되는 일본의 기류를 감안하면 이마저도 이만 저만으로는없는 것이있다.

기우는 것을 바라지 만, 현재와 같은 최악의 한일 관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만일 일본의 다음 또는 다음 다음 총리로 대남 강경파 인물이 취임하게되었다고 일단 사태 어디로 튈 모르겠어요.

영유권에 대해 더욱 강경 한 조치를 바라는 일본의 여론에지지를 받아,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방식과 같은 바람에 일본이 독도에 대한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고 있다고 봐야한다.

한국인은 독도에 대한 분쟁을 벌이는 상대가 중국이 아닌 일본이다라는 것이 전혀 감사하지. 상대가 만일 중국에 있었다고하면 독도는 지금 쯤 어떻게되어 있을까?

상대가 가담하기 쉬운 일본인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가담 쉬운 일본 '도 이제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행복'은 당시에는 깨닫지 않지만, 나중에 처음 깨달을 수있게된다 볼품이다.

한일간의 독도 갈등이 더욱 심해지면, 주체할 미국이 위안부 문제를 중재 한 바와 같이 독도 문제도 반 강제적으로 중재 할 수있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에도 그렇게되면 한국 만 손해이다.

실효 지배하고있는 한국이 안되고 원래 일본을 상대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피로감이 극에 달한 미국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한국이 거부하기 어려운 일종의 압력을 병행 할 때, 다음과 같은 식으로 촉구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 할 수 있는가 ?

"국제 사법 재판소에 맡겨 결론을 내리자. 재판이 싫으면하면 공평하게 독도의 동도와서도 중 일본 측에 가까운 동도를 일본에 양보하고 대립을 끝내 것"이라고.

현재 한일간의 독도 영유권 분쟁은 동서고금의 많은 영유권 분쟁 사례 중 유일하게 실효 지배하는 측에서 가만히있는 사람에게 먼저 공격하고 자극하면서 실익도없고 피해 만 떠맡는 진기한 사례로 기록 될 것이다.

결국은 한국인의 고집적인 반일이 "한국의 무대응 vs 일본의 무대응 '는 이전의 판정승 상황 ( 「미해결 보류")를 스스로 걷어차 우회하는시키고 상대방이 그토록 바랍니다 '한국의 공세 vs 일본의 대응」, 즉 「한국의 비합리적인 선택 vs 일본의 합리적 선택'의 구도를 만들었다.

바보라면 손에 들어온 영토도 제대로 유지할 수없는 것 같다.

2021/09/25 21:07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