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해설>일본에 사죄 요구의 양금덕(梁錦徳)씨란? =한국재판에서는 승소
<W해설>일본에 사죄 요구의 양금덕(梁錦徳)씨란? =한국재판에서는 승소
한국광주(광주)시의회에서 양금덕(梁錦徳)씨와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회'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서 양자는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사죄는 커녕 배상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94세의 양씨는 「사죄하라~양금덕」이라고 쓴 종이를 내걸어, 「어릴 때, 나고야의 미쓰비시 공장에서 2년간도 눈물로 보냈다.밤에는 폭격기가 날아 와서, 방공하자 숨어 죽음의 공포로 떨렸다”고 말했다. 또 “지금도 그 후 유증에 시달리고 밤에도 잠을 잘 수 없다”고도 말했다.

양씨는 이어 “대법원(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 후 3년간은 30년보다 긴 세월이었다. 나는 이미 94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사죄 한마디 을 듣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가?”라고 물었다.

이렇게 호소하는 양금덕씨는 어떤 인물인가?

양씨는 한국 남서부 전라도 나주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5월, 일본인의 교장으로부터 「중학교에 진학시켜 준다」라는 말에 속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하지만, 역산하면 17세 때이므로 이미 아이가 아니다. 한반도 출신자에 대한 징용은 1944년 9월부터 가능해졌기 때문에 양씨의 경우는 적어도 징용의 형태가 아닌 것 같다.

양씨는 자전으로 공부와 운동이 능숙하고 학급장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가서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고, 「일본행」에 손을 썼다는 것. 집에 돌아가서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격노했기 때문에 양씨는 다음날 '일본에 가지 않는다'고 담임에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명을 받고 나서 가지 않으면 부모를 경찰서에 넣는다"는 담임 교사의 말을 듣고 무서워졌다는 것. 양씨는 “선반에서 아버지의 한코를 몰래 꺼내 담임 교사에게 건넸다”고 했다.

그리고 양씨는 근로정신대의 대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전라도에서 138명, 충청도에서 150명으로 합계 288명의 미성년 여성이 ‘끌려갔다’고 표현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일하게 된 양씨는 1944년 12월 7일 공장에서 '도난카이 지진'에 재해를 입었다.

"휴가 시간에 10분 앞으로 들어간 고향 선배 최정래와 동기 김향남이 무너진 벽에 깔려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자전에 기록했다. 이 사고는 평생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그 지진으로 전라도 출신 10대 소녀 6명이 사망했다. 무너진 벽의 틈에 갇혀 생명을 구해진 양씨는 “그 때 왼쪽 어깨를 부상당해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있다”고 말했다.

종전 후 1945년 10월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양은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중노동을 해도 임금을 일절 받지 못했다”고 했다. “'너희들의 고향 주소를 알고 있으니까 확실히 월급을 보낼 것'이라는 일본인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도 말했다.

귀국 후에는 '더 많은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위에서 위안부에 다녀왔다고 오해되어 결혼이 어려워지고 언니 소개로 결혼한 후에도 남편에게 이혼되었다는 것. “일하지 않으면 굶주리고 죽을 정도”였던 양씨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결과, 여동생을 공부시키고 결혼시켰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한 것은 1992년으로 결과는 패소였다. 그 후 한 일본인이 “미쓰비시 공장에 강제동원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듣고 양씨는 “숨기고 있던 강제동원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1999년 3월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지만 모두 패소. 2012년에는 한국 광주 지방법원에서 소송을 냈다. 2018년 11월 양은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양씨 등 원고 1인당 위자료 1억~1억5000만원(약 957만~1436만엔)의 지불을 명한 판결.

일본 정부는 이를 1965년에 해결된 문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징용공'이 아니라 '모집공'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해석의 차이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1965년 한국은 일본과 무엇을 약속했을까.

불행한 시대를 살아온 94세의 양씨에게, 세계 10위의 선진국이 된 한국이, 1965년에 일본에서 천문학적인 금전을 맡겨둔 한국 정부가, 늦어졌다고 사죄해 그 돈을 지불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1/12/02 21:10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