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解説>関東大震災の朝鮮人虐殺に関する資料、新たに発見=日本政府の「『知らぬ存ぜぬ』の姿勢に正面から反論」と韓国メディア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에 관한 자료, 새롭게 발견
이번 달 14일, 일본의 매일 신문은 “관동 대지진(1923년 9월 1일 발생)에서 일어난 조선인 집단 학살에 대해서, 같은 해 11월에 당시의 육군성이 실시한 실태 조사의 일부 자료가, 방위 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서 새롭게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관동 대지진 발생으로부터 올해 100년을 맞이했지만, 일본 정부는 지진 재해의 혼란 속에서 일어난 잔혹한 행위에의 논평을 피해, 사실에 마주한다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마츠노 히로이치 관방장관은 올해 8월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료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보도합니다.
매일 신문은 “자료의 존재는 지진 재해 직후 정부가 불법 학살 사실을 인식하고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동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발생. 수도권 등이 현재 진도 7과 6강에 해당하는 격렬한 흔들림에 습격당했다.
도쿄와 가나가와를 중심으로 11만동 가까이의 주택이 전괴되었다. 또한 발생시간이 낮과 겹치기 때문에 동시 다발적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도 피해를 더욱 확대시켰다. 화재로 소실된 건물
는 21만2000동을 웃돌고 이 중 주택은 44만7000호에 이른다. 사망자·행방불명자는 10만 5000명을 넘어 메이지 이후의 일본에서는 최대의 재해가 되었다.
지진 그 자체의 피해뿐만 아니라 '재해시의 악마'도 문제가 되었다. 지진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넣었다"등과
시위가 날아가 군과 경찰 외에 민간인으로 조직된 자경단들이 일본에서 생활하던 조선인과 중국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인 학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의 정확한 희생자
수는 불분명하지만 내각부 중앙방재회의 보고서는 지진 재해로 사망한 약 10만5000명의 '1~수%'로 추정하고 있다. 또, 이 학살을 둘러싸고, 사실 그 자체를 의문시하거나
정하거나 하는 언설도 퍼지고 있어 역사의 풍화나 왜곡(와이쿄쿠)이 우려되고 있다. 한편, 조선인 학살을 둘러싸고, 당시의 상황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책을 발견해, 고려 박물관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7월 5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열린 기획전 '관동대지진 100년 은폐된 조선인 학살'에서 일반 공개됐다. 그림책은 지진 재해로부터 3년 후인 1926
년에 그려진 총 2 권의 「칸토 대지진 그림 권」. 이 중 제1권에는 지진으로 집에서 도망치거나 화재에 휘말리거나 하는 민중의 모습이 시계열로 그려지는 가운데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람
이들이 검과 대나무 먹이를 가진 재향군인들에게 습격당해 피를 흘려 쓰러져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림 권에는 "코의 참가에 조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래서 (사이류)의 염려
을 촉구하라”고 적혀 있다. “이 참혹을 당하지 않았던 다수의 사람들에게 잘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라는 의미로, 100년 전의 지진 재해 직후에 일어난 비참한 사건에 진지하게 마주할 필요성을 던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뒤를 향해 올해 8월 당시 마츠노 관방장관은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참의원 위원회에서는
야당의원으로부터 이 발언에 대한 질문이 잇따랐다. 이러한 가운데, 매일 신문은 이달 14일, 조선인 학살에 대해 당시의 육군성이 실시한 실태 조사의 일부 자료가 새롭게 발견된 것을
보도했다. 기사에 의하면, 육군의 지방 기관에서, 사이타마현 서부의 5군을 관할하는, 구마야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 「관동 지방 지진 재해 관계 업무 상세보」에는, 현재의 사이타마현 구마야 시내에서 보호의
때문에 경찰서로 이송 중인 조선인 40여명이 '살기 세우는 군중을 위해 悉(일)씩 죽인다(살해지는)' 등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선인(조선인) 학살', '불법행위' 등
라는 표현도 사용되고 있었다. 또 "선인의 습격은 마침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독을 (우물에) 던져진 일도 듣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다고 한다.
이 보도를 받아 한국 언론도 매일 신문 기사를 인용하면서 전했다. 한겨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며 조선인 학살에 대해 나타내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에서 애매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일본 정부의 오랜 기간에 걸친 ‘모르는 존재’의 자세에 정면에서 반론하는 기사가 14일 매일 신문전자판
에 게재되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 자료를 발견한 저널리스트의 와타나베 연지씨를 취재. 기사에 따르면, 와타나베 씨는 동지의 취재에 "왜 이런 일이 일어 났는지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자료에서 무엇을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2023/12/26 11:3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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