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해설>한국미디어가 전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27일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은 한국 언론 각사도 보도했다. 그러나 각사와도 취급은 그리 크지 않고 기사 내용도 국장 실시의 찬성파와 반대파로 국민이 이분한 것 등을 자세하게 전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겨레신문은 이날 국장을 시계열로 소개했다. 또 “국장에는 국내외 주요 인물 4300여명이 참렬했다”고 전한 후 “그러나 선진 7개국(G7)의 정상들은 참렬하지 않고, 키시다 후미오 총리가 국장의 명분으로 내걸었다 ‘조문 외교’는 크게 퇴색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집필한 기자의 견해로 마무리되었다. 기자는 “국장은 끝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둘로 나뉘어진 채”라고 계속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시작에 아베 전 총리를 접했다. “일본의 헌정 사상 최장이 되는 8년 8개월에 걸쳐 총리를 맡은 아베 전 총리는 민주당에 빼앗긴 정권을 다시 되찾아, 중참 양원의 6회에 걸친 선거를 모두 승리한 것으로, “일본 보수 의 심장』이라고 불렸다”라고 소개. “올 7월에 구통일교회와 자민당의 유착에 원한을 가진 전 자위관의 총격을 받아 암살당했다”고 경위를 전했다. 이 신문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찬부가 격렬하게 나뉘어진 가운데 행해졌다”고 전해 국장의 찬성파와 반대파 쌍방의 목소리를 소개했다. 또 매일 신문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일본 국민의 62%가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라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국장의 모습이나, 국장의 실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한 시위의 모습 등을 복수의 사진을 사용해 보도해, “기시다 총리가 야당이나 여론의 반대를 고려하지 않고 국장을 거행해, 국내 여론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한국에서는 한독수 총리를 단장으로 삼는 조문단이 참렬했다. 28일에는 도쿄 전 아카사카의 영빈관에서 키시다 총리와 회담했다. 기시다씨는 “윤석결 대통령과 한씨를 비롯해 많은 한국 여러분들로부터 수많은 정중한 조의를 받았다”고 사의를 전했다. 한 씨는 “아베 씨의 퇴거에 다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한 씨는 아베 전 총리와 면식이 있다고 하고, 포보에 접했을 때는 기자단에 “동북아를 위해 노력하는 쪽이 죽어 매우 유감스럽다”고 조의를 표했다. 게다가 2013년 세계경제포럼의 연차총회(다보스 회의)에 아베 전 총리와 박근혜(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를 되돌아보며 “아베 전 총리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일간에는 다양한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국민끼리는 가까운 관계이며,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관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여론이 이분한 국장이지만, 한국은 국장의 취급에 대해 어떻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에 통합되었다. 관련법에서는 현직·전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했을 때에 국가장을 집행하고 있으며, 국가나 사회에 대해 현저한 공적이 있어 국민이 바라보는 사람을 국가장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국가장을 거행하기 위해서는 행정안전부(부는 성에 상당)가 추천하고 각의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가장으로 집행됐지만 반대 의견도 많았다. 1980년 한국에서는 민주화 시위를 탄압해 다수 사상자를 낸 광주 사건이 일어났지만 노씨는 이 사건에 관여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문재인) 정권은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과 91년 북한과의 유엔 동시 가맹 등 실적을 고려해 국가장으로 실시를 결정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장례식은 가족장에서 집행됐다. 전씨도 노씨와 마찬가지로 광주 사건으로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 전씨가 노씨와 달리 국가장이 배달된 배경에는 사건에 대한 반성이 끝까지 없었던 것이다. 청와대에서 弔花나 조문도 없었다.

2022/09/29 12:42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