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각지에서 추도행사가 열렸다. 참석한 유족들은 노란 점퍼를 입고 식에 임했다. 사고 후 한국에서는 '노란 리본 캠페인'이 퍼지고 도시에서는 여전히 리본을 착용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리본에 담긴 의미, 그리고 지금도 리본을 붙이는 사람들의 생각이란.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군의 광메도(관매도) 앞바다
해상에서 전복, 침몰했다. 배는 서울 근교 인천시 인천항에서 남부 제주도로 향하고 있어 수학여행 중 고등학생도 많은 승선을 하고 있었다. 이 사고로
고등학생 299명이 사망, 5명은 지금도 행방불명인 채. 사고를 둘러싸고는 발생 후 선사, 해양경찰 등 대응 불수제가 문제시됐다. 또 당시 박근혜(박근혜)
정권의 초동 대응에도 비판이 모여 그 이후의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사고 당시 선장들은 승객을 구조하지 않고 탈출해 대기를 요구하는 선내 방송에 따른 승객들이 희생됐다. 선장과 운
항회사의 간부, 경비정의 전정장들은 유죄가 되었지만, 업무상 과실치 사상에 묻힌 해양 경찰청의 장관(당시)등 동청의 상층부는 작년 11월, 무죄가 확정했다 .
사고로부터 이달 16일로 10년이 되었다. 한국 각지에서는 유족과 시민들이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바쳤다. 희생된 수학여행 중 학생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가 있는 안산시에서도 추도식이 열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족과 시민 등 약 3500명이 참석했다. 사고를 풍화시키지 않기 위한 활동 등에 임하는 “4·16 재단”
김광준 이사장은 “10년은 세월호 사고의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부족한 세월이었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그 10년을 어리석게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후 한국에서는 사회의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김씨가 지적하듯 안전한 사회 구축은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10월에는 서울의
번화가 이태원(이태원)에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잡답사고가 발생. 경찰이나 지자체의 안전 대책의 미비, 사고의 대응이 문제가 되었다.
세월호 사고 후 한국에서는 행방불명자 수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승객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SNS
의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꾸거나 가방에 리본을 묶어 넣는 '노란 리본 캠페인'이 퍼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진상 규명을 요구합니다.
하는 의사와 사고를 풍화시키지 않는다는 맹세가 더해졌다. 노란 리본은 원래 미국에서 '전장에서 무사히 귀환'을 기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 사고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16일 식전에서도 유족들은 노란 점퍼를 입고 출석
했다. 한국지 한겨레는 16일 ''기억의 힘' 믿는 아이들 '우리가 세월호 리본을 붙이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거리에 지금도 리본
를 익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수학여행 중에 사고에 휘말려 희생된 학생이 다니던 고등학교가 있는 경기도 안산지역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소개. 신문에 따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가방에 노란색 리본을 붙이고 있다고 고등학교 2년 학생은, 동지의 취재에 “리본을 붙이고 있으면 사람들은 계속 잊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하고 있으면 안나코
라고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리본을 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세월호 사고는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반성과 성찰로 참사를 마주하는 시민들과는 달리 정부는 세월호 사고가 잊혀지기를 바라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2024/04/17 12: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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