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解説>広島への原爆投下から79年、「韓国のヒロシマ」でも慰霊式=南東部のハプチョン
히로시마에의 원폭 투하로부터 79년, 「한국의 히로시마」에서도 위령식=남동부의 합천
히로시마에의 원폭 투하로부터 79년이 된 6일, 히로시마시 나카구의 평화 기념 공원에서는, 평화 기념 식전이 경영되어 피폭자나 유족들이 희생자의 명복을 기도했다. 같은 날 한국 남동부
의 경상남도 합천에서도 한국인 원폭희생자의 위령식이 거행됐다. 합천에는 한국인 피폭자가 많이 살고 있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도 불린다.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시 주최 평화식전에는 피폭자와 유족 등 약 5만명이 참렬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에서 전투를 이어가는 이스라엘 주일대사의 모습도 있었다. 마츠이 이치
미시장은 악화하는 국제정세를 근거로 평화선언에서 “희망을 가슴에 마음을 하나로 하여 행동을 일으키면 핵억지력에 의존하는 위정자에게 정책전환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시민사회 전화
걸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비핵 삼원칙의 견지를 다시 표명해 “핵군축을 향한 기운을 높이기 위해 국제사회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식전에서는 지난 1년간 사망이 확인된 5
079명의 이름을 적은 원폭사망자 명부를 위령비에 담았다. 희생자는 34만4306명이 됐다. 한편 한국의 경상남도 산악의 거리 합천에서도 이날 원폭희생자를 추도
하는 위령식이 행해졌다. 합천에는 일본의 통치 시대에 벌이기나 징용 등으로 히로시마에 걸쳐 피폭해, 종전 후에 귀향한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 연합 뉴스에 따르면 피폭 한 한
국피해자 약 5만명 중 70%가 합천 출신으로 되어 현재도 존명 피해자 약 1700명 중 약 250명이 합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합천에 있는 위령각에는 희생자
의 위패가 납부되고 있어, 매년 8월 6일에는 위령식이 행해지고 있다. 올해도 피폭자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 약 300명이 참렬. 위령각에 헌화하고 희생자를 悶했다. 식전에서
한국 원폭피해자협회의 정원술 회장은 핵무기에 대해 “얼마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무기인가”라며 폐절을 호소했다. 경상남도 복지여성국의 신정우 국장은 “
고통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희생자의 희생이 낭비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날의 5일에는 히로시마시의 평화 기념 공원에 있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의
앞에서 위령제가 열려 희생자를 추모했다. 이 위령제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현 지방본부의 주최로 열리고 있어, 55번째가 되는 올해는, 재일한국인이나 피폭자등 약 250명이 참렬
. 지난 1년간 사망한 4명의 이름이 더해진 2814명의 사망자 명단을 납입했다. 참석자 전원으로 묵묵히 한 것 외에, 치마 초고리 모습의 여성들이 위령의 노래를 바쳤다. 동본부의 김
기성단장은 “세계 평화와 인류 번영을 가슴에 새기고 원폭 희생자들로부터 계승한 모든 기억을 다음 세대로 연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추모의 사사를 말했다. 위령제에는 한국 국외
에서 사는 한국인들을 지원하는 재외동포청 이산덕 청장도 출석. “다시 원폭이라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인류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 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위령비는 1970년에 건립되었다. "죽은 자의 영은 거북이의 등을 타고 승천한다"라는 고사가 되어, 거북이를 따라가는 받침대 위에 비주가 세워져, 그 위에 쌍용을 새긴 왕관이 실려 있다
한다. 비는 당초 조선왕가의 일족으로 군인으로서 히로시마에 부임하고 있던 이전하가 원폭 재해 후에 일시 피난했다고 하는 장소에 세워졌지만, “평화기념공원 밖에 있는 것은 차별적이다 "라고
의 비판이 올라 99년에 공원으로 옮겨졌다. 지난해 5월 선진 7개국 정상회의(G7 정상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히로시마를 찾은 한국의 윤석결(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이 위령비를 찾아 헌화했다. 한일 정상이 함께 위령비를 찾는 것은 처음이었다. 패전시 일본에는 약 300만명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고, 수만명이 히로시마
시내에서 피폭했다고 한다.
2024/08/07 13:4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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